철기시대, 부족 사회나 마을 공동체에서 의사보다 중요한 존재는 대장장이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현대적 의미의 의사라는 개념조차 없었지만, 생존과 직결된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죠.
농기구부터 조리 기구, 그리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맞설 무기까지 - 대장장이의 손을 거치지 않는 생활용품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장장이의 실력이 곧 마을의 경제력이자 생존력을 좌우했던 것입니다.
대장장이들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직감으로 풀무질을 반복하며 튼튼한 도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은 마을 전체에 큰 위기였죠. 부족의 리더들은 이런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했습니다.
농업은 여전히 사람의 감과 경험에 의존한다
최근 제조 등, 다른 여러 분야에서는 기술과 장비,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며 자동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농업은 아직도 사람의 감과 경험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농업 생산 방식을 살펴보면 :
- 노지 재배 : 자연환경의 절대적 영향을 받음
- 컨테이너팜 : 수익성이 낮아 손익분기점 달성이 어려움
- 온실 재배 : 수익성과 관리 가능성의 균형점
이 중에서 온실 재배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면서도 재배자의 역량이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온실에서는 재배사나 작업자의 실력에 따라 수익 편차가 매우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스마트팜 시설이 있더라도 제어를 정확하게 못하면 일반 온실보다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라고 할 정도로 작업자의 숙련도가 중요합니다.
대장장이의 지혜를 농업에 적용하기
시설 원예 농업 생산팀을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농업에서 사람 의존성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이 질문을 고민하다 보니 철기시대 부족장의 고민이 떠올랐습니다. 장인 수준에 오른 대장장이의 기술을 체계화해서 후대에 전수하려 했던 부족장의 상황과, 숙련된 재배사의 부재를 대비해야 하는 제 상황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그 부족장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1. 프로세스 파악
부족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장장이의 작업 프로세스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쇳덩이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리고, 풀무질로 열을 조절하는 과정은 단순한 직감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한 순서와 각 단계를 넘어가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고, 이 모든 것이 도구의 강도와 품질에 직결되었죠.
농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종부터 육묘, 정식, 철거까지의 전 과정과 각종 기본 농작업, 시설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동의 프로세스를 명확히 이해하고, 각 단계별 핵심 요소를 파악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하지만 프로세스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경험과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세스 정리는 시스템화를 넘어 자동화로 나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기 때문에 가장 오랜 시간 고민하고 세심하게 다뤄야 할 부분입니다.
2. 단계별 핵심 조건 찾아내기

대장장이는 각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들을 몸으로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금속을 너무 오래 가열하면 약해지고, 너무 짧게 가열하면 단단해지지 않는다는 사실 같은 것들 말이죠. 이런 조건들을 지키는 것이 도구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이었습니다.
농업에서도 단계별로 반드시 지켜야 할 필수 조건들이 있습니다:
- 파종 단계 : 빛보다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 유지가 더 중요
- 생육 초기 : 관수 전략에 특히 집중
- 생육 중기 : 증산량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요소인 광량 관리
물론 작물 재배에는 광, 온도, 습도, 관수 전략(급액과 양액배합) 모든 요소가 중요하지만, 단계별로 특히 신경 써야 할 핵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작기 준비 단계의 온실 소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양액 배관과 온실 기본 인프라 소독은 농약, 염기성 약품소독, 산소독을 순차적으로 진행합니다. 각 약품의 농도, 투입 시간, 소독 완료 기준(예: 락스 소독 후 pH가 특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원수 공급) 등을 명확히 정하지 않으면 작물 피해는 물론 작업자에게도 위험한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키는 것이 성공적인 생산 관리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업무를 그냥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왜? 정말?" 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방향을 점검하고 조건을 최적화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3. 반복을 통한 습관화
정해진 단계와 조건들을 파악했다면, 남은 것은 장인처럼 조건에 맞춰 단계를 수없이 반복하며 숙련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매번 같은 강도로 망치질하고, 일정한 속도로 풀무질하는 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기술의 연마 과정이었습니다.
농업 생산관리에서도 반복은 필수입니다. 데이터 수집, 병해충 관리, 물 관리 등은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정밀도가 높아집니다. 반복을 통한 습관화로 업무 루틴을 만들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성공적인 관리의 기반이 됩니다.
앞서 정리한 매뉴얼과 생산 관리 시스템의 도움을 받으면 '올바른 방식'으로의 '습관화'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대장장이의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땀 흘려야 했던 그 시절보다 훨씬 진화한 생산 관리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우리는 어찌 보면 행운이 아닐까요?
4. 새로운 기술 개발과 도입
마지막으로 대장장이는 단순히 도구를 만드는 것에 멈추지 않고, 반복 과정에서 더 나은 도구를 만드는 자신만의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어떤 금속을 사용할지, 어떤 온도가 적합할지를 실험하며 품질을 개선해 나갔죠. 더구나 자신이 모르던 새로운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장인으로 남는 비결이었습니다.
농업에서도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농업은 시설이나 외부 환경이 기존과 달라지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그간 습관화하고 체득해 놓은 방식을 재점검하면서 최적화하고 효율화하지 않으면, 더 큰 시행착오를 겪거나 발전이 정체되기 마련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기존 방식(감과 경험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이라 해도)에만 의존하기 힘들어지는 것이 최근 농업의 어려움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새로운 기술에 상시 관심을 갖고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상용화된 기술로는 환경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생육 조건을 설정하는 기술, 자동화 장비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농업 생산에도 일반 산업처럼 로봇과 AI가 활용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기술 도입은 단순히 과거 방식을 반복하는 것을 넘어서 농업 생산의 발전과 혁신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마무리 : 농업 자동화의 꿈
장인의 경지에 오른 대장장이의 경험과 기술을 체계화함으로써 마을의 생산성이 안정화되었듯이, 농업에서도 체계적인 생산 관리가 사람 의존성을 줄이고 자동화와 효율화를 이루는 핵심이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 프로세스 정리
- 매뉴얼 정립
- 반복과 습관화
- 과학과 기술의 적용
이 단계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농업의 미래를 재정의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의하든 않든, 농업 자동화의 꿈은 더 커지고 있고,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세계 각지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노력들이 제가 겪고 있는 이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 시간 투자가 의미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아이오크롭스는 농업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지식을 바탕으로 농업 생산 관리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농작업 환경 개선, 작업 효율성을 올리고 싶다면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아이오크롭스와 상의하세요!
이 포스트는 아이오크롭스 AG팀 이민석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옮겨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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